제5화. 사회적 역할의 전환 – 돌봄 받는 자에서 주는 자로
📘 몸맘케어 감성노년 에세이
제5화. 사회적 역할의 전환 – 돌봄받는 자에서 주는 자로
“이제는 자식들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못 해요.
그래서 더 말 조심하게 되고, 부탁도 쉽게 못 하겠어요.”
가끔 어르신들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무겁다.
언제부터인가, 나이 든다는 건
“도움받아야만 하는 존재가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 나이든다는 건 의존의 시작일까?
노년은 확실히 변화의 시기다.
움직임은 느려지고, 병원 가는 일이 많아지고,
가계부를 쓰던 손이 떨릴 때면
마음속에서 작게 한숨이 새어 나온다.
“이제 나는 돌봄을 받아야 하는 존재인가…”
이런 생각은 곧 자존감을 흔들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낮춰버린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정말 나이 든다는 건 '받기만 하는 삶'의 시작일까?
오히려 그것은 새로운 ‘주는 삶’의 방식으로 전환되는 시기는 아닐까?
🔹 돌봄은 단지 육체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돌봄을
밥을 차려주고, 병원에 데려가고, 약을 챙겨주는
실질적인 행위로만 여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돌봄이 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귀,
오랜 세월을 묵묵히 살아온 경험,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따뜻한 표정.
이런 감정의 돌봄은
젊은 세대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노년의 전유물이기도 하다.
🔹 어르신은 여전히 공동체의 ‘정서적 기둥’이다
한 마을회관에서 노인회장으로 활동 중인 분이 계신다.
그분은 특별한 강연도, 화려한 말도 없지만
늘 누군가의 옆에 조용히 앉아
따뜻하게 “요즘 어때요?”라고 묻는다.
사람들은 그분과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 나누는 그 짧은 시간이
자신을 살아있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렇다.
어르신은 공동체 안에서 여전히
정서적 지지자, 공감의 연결자, 시간의 교사로 존재하고 있다.
🔹 나도 한때는 돌봄의 의미를 몰랐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도 나이 들어가면서 스스로를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고 생각했다.
괜히 부탁이 죄송했고,
가족들 앞에서 “괜찮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어느 날,
손주가 “할아버지랑 있으면 마음이 편해”라고 말하던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돌보고 있었구나.”
나의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겐 안심이고, 안정이고, 따뜻함이었다는 것을.
🔹 우리는 여전히 ‘주는 존재’다
돌봄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마음의 방향이다.
- 하루의 안부를 묻는 말 한마디로,
- 지나간 시간을 나누는 이야기로,
-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으로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돌봄을 건넬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노년의 아름다움이다.
받는 삶에서 주는 삶으로의 전환.
그 안에야말로 깊고 넓은 존엄이 숨어 있다.
🟡 함께 나눠요
- 당신은 요즘 누구의 마음을 돌보고 계신가요?
- 혹은 누군가의 작은 말 한마디에 위로받은 적이 있으신가요?
《몸맘케어 감성노년 에세이》는
우리의 존재가 여전히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함께 기억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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