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의 그림자 — 정치가 감정을 소비할 때
“국민을 위한다는 말이, 왜 이토록 가볍게 들릴까.”
■ 정치는 언제부터 감정을 소비하기 시작했는가
“공감”이라는 말은 때로 “선동”이라는 그늘을 품고 있다.
정치는 감정을 품은 예술이면서도,
냉정한 계산이 깃든 전략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국민의 고통, 분노, 상처까지 정치의 연료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가난한 청년의 분노는 투표를 위한 숫자로,
중산층의 불안은 인기몰이의 전략으로,
노인의 외로움은 정당의 표 계산 안에 들어간다.
감정은 돌보는 것이지, 소모품이 아니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우리의 감정을 ‘소비’한다.
■ “국민을 위하여”라는 말의 이면
정말 국민을 위한 일이라면, 왜 그 결과는 국민을 힘들게 만들까.
포퓰리즘(politics of the people)은
언뜻 듣기에 아름다운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가 되기 위해선
책임과 미래에 대한 약속이 함께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정치는 쉽고 감성적인 언어로 대중을 매혹시키며
불편한 진실은 감춘 채,
즉각적인 분노와 환호만을 유도한다.
그리고 그 감정이 사라질 때,
그 정치인은 책임지지 않는다.
■ 감정의 정치는 사회를 분열시킨다
“우리는 그들보다 낫다.”는 말이 넘쳐나는 곳에는, 어느새 증오가 피어난다.
포퓰리즘은 ‘우리’를 강조하며 ‘그들’을 만들어낸다.
다른 정당, 다른 세대, 다른 지역, 다른 이념…
분열은 동원의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은 일부러 선을 긋고,
그 경계에 선 사람들의 감정을 부추긴다.
결국 남는 것은
증오와 혐오, 그리고 피로뿐이다.
공감의 정치는 사람을 이어주지만,
포퓰리즘은 사람을 갈라놓는다.
■ 감정이 아닌 '신뢰'가 중심이어야 한다
눈물 한 방울보다 중요한 것은, 그 눈물을 마주한 뒤의 책임이다.
진정한 정치는
감정을 읽되, 감정을 이용하지 않아야 한다.
아픈 사람의 마음을 보듬되,
그 고통을 자신의 정치적 무기로 삼아선 안 된다.
진짜 지도자는
국민이 듣고 싶은 말보다,
들어야 할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 우리는 언제나 정치를 감시해야 한다
정치는 유혹이고, 국민은 언제나 그 유혹의 마지막 방어선이다.
포퓰리즘이 자리를 잡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 말들이 우리 마음의 공허를 파고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공허를 채우는 건,
선동도, 구호도 아닌
정직한 정책과 신뢰의 말이다.
우리가 감정에 휩쓸릴 때,
정치는 우리를 흔들고,
우리가 깨어 있을 때,
정치는 스스로를 다잡는다.
💬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러분은 정치인의 말에 감동한 적 있으신가요?
혹은 분노하거나, 실망했던 경험은요?
그 감정들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함께 나눠주세요. 진심은 언제나 울림을 남깁니다.
몸맘케어는
당신의 감정과 함께 생각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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